부하를 잘 다루는 법

경제/경영/처세 2007. 1. 13. 21:53
부하를 더 잘 다루는 법 [조인스]
한 직원이 중요한 프로젝트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되었다.

중요한 이해당사자들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자리여서 미리 프레젠테이션을 잘 하라고 당부도 하였고, 주의할 점을 알려주었는데도, 막상 당일 프레젠테이션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초기에 참가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데도 실패했고, 질의에 대한 답도 초점이 없이 중언 부언하다 끝이 났다.

상사는 속이 타서 직원을 불러 얘기를 시작했다.

"자네, 이번 프레젠테이션의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직원이 잘 대답을 못하자, 바로 질책이 이어진다.

"내가 그렇게 강조를 했는데도, 초기에 프로젝트의 목적에 대해 왜 좀더 주의를 집중시키지 못했나?"

"질문이 오면 핀트가 맞는 답을 해야지, 중언 부언 하면 어떡하냐?" 등등.

이런 식으로 얘기가 시작되면 보통 대화의 80%는 상사의 질책과 훈계, 충고로 이어지고 직원은 잔뜩 주눅이 들어, 다음 번 프레젠테이션에 더 자신을 잃게 되기 쉽다.

실제로 상사 입장에서는 그 직원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얘기를 해주고 있다고 굳게 믿지만, 듣는 직원 입장에서 그 대화는 일방적으로 질책 받는 자리, 빨리 모면하고 싶은 자리, 늘 듣던 레퍼토리를 다시 듣는 자리일 뿐인 경우가 많다.

코치형 상사는 이런 경우에도 직원을 비난하기에 앞서, 그가 충분히 스스로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해결책까지 생각해내도록 지도해줄 수 있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느라 수고 많았네. 어떤 점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나?"

우선 이렇게 인정을 해주고 신뢰를 보여준 다음에 개선할 것을 물어본다.

"다음에 더 잘하려면 어떤 점을 개선하고 싶은가?"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마음에서 우선 내려 놓고, 중립적으로 이렇게 물어보자. 경청하다 보면 직원들은 상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아이디어를 생산해낸다.

이런 과정을 해보고서야 직원들이 생각보다 똑똑한 것에 깜짝 놀랐다는 경영자도 많다. 문제는 직원을 챔피언으로 만들 수 있는 상사의 능력이지, 직원의 무능이 아닌 것이다.

문제점을 깨닫고 해결책을 향해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자신의 성찰에 의할 때 가장 강력한 것이 될 수 있다. 상사의 몫은 그것을 이끌어내어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우도록 진전시키고, 성장하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럼 우선 무엇부터 노력해보겠나?"

"그것을 하는 데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노력한 결과를 언제 함께 점검해 보면 좋을까?"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나?"

아무리 결과가 안 좋더라도, "넌 안돼!" 라는 메시지 대신에, 상대방이 그 사안을 풀어나갈 주체임을 분명히 해주고, 상사로서 지원을 해준다면 동기 부여의 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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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제목들을 올려주세요.

Prayer 2007. 1. 13. 21:32
우리 모두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제목들을 올려주세요.
자기와 관련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

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모여 바다를 이루듯이
우리 기도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바다를 이룰 것입니다.
시작은 작으나 끝은 클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입니다.
모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마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의 강한 바램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 강한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주의 기운을 바꿀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주의 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가장 강력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주의 흐름에 가장 강력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우리 이외의 누군가를 위해
우리 이외의 무언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면

순수하게 기도할 수 있다면
순수하게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순수하게 땀을 흘릴 수 있다면

여러분은 우주를 바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작은 보이나
그 끝은 아무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순수한 기도는
그 끝을 볼 수 없습니다.
아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신이 그 끝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끝이 신과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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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억달러 ‘혁신적 자선’…나눔의 역사 바꿨다

Bible 2007. 1. 13. 21:23

320억달러 ‘혁신적 자선’…나눔의 역사 바꿨다




세계 최대의 자선단체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회장 멜린다 게이츠(43)는 자선사업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게이츠 재단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규모와 질이 가히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멜린다는 세계 최고 부자인 남편(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 덕분에 유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편과 공동운영하는 게이츠 재단을 통해 아프리카 빈곤국에서 죽어가는 어린이 수십만명을 살리고, 미국의 교육개혁을 지원하는 사업을 이끄는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다.

남편이 돈 버는 법으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리더였다면, 멜린다는 그 돈을 제대로 쓰는 법으로 세계의 부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계 자선사업계의 역사에 ‘게이츠 재단 이전과 이후’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프리카 여행이 계기=멜린다는 한 인터뷰에서 “1993년 아프리카 여행이 나를 완전히 바꿨다”고 말했다. 맨발로 흙먼지 이는 길을 걸어 채소를 팔러 가는 아프리카 여성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게이츠 부부는 몇 년 후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를 읽었다. 질병에 걸리는 사람들의 90%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인데 이들 나라가 보유한 보건자원은 전 세계 보유량의 10%뿐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빈곤국의 보건문제를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2000년 게이츠 부부는 1억 달러를 기부해 재단을 세웠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똑같은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믿음이었다.

◆목소리를 높이다=결혼 전 MS사에 근무하던 멜린다는 자녀 양육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재단 일에는 설립 때부터 적극 참여했다. 재택 근무 형식으로 전략구상을 하고 지원활동을 펼칠 빈곤국가를 방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작년 ‘2006년 세계를 움직인 재계 여성’을 선정하면서 멜린다를 1위로 뽑았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5년 멜린다를 남편 빌, 가수 보노와 함께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재단에서 멜린다의 역할은 밖에 알려진 것보다 크다. 미국 도서관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사업을 지원하던 작은 재단을 개도국 질병퇴치와 교육개혁을 지원하는 ‘거물’로 만든 것은 멜린다의 공이다.

멜린다는 질병과 빈곤문제를 깊이 연구해, 에이즈나 말라리아에 대해서는 의학 전문가에 버금가는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미국의 예전 부자들이 그랬듯이 그저 좋은 일에 써 달라고 돈을 맡기는 것이 아니다. 직접 현장에 가고, 어떻게 도울지 결정하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감시하는 것이다.

◆느낌이 중요하다=멜린다는 ‘현장’을 중시한다. 부부가 자주 ‘공부여행’을 떠난다. 가난하고 괴로운 삶의 현장에 직접 가 보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해당국 정부가 내놓는 통계숫자는 보지 않는다. 멜린다는 최근 WSJ와의 인터뷰에서 “마을을 직접 방문해서 거기 사는 엄마와 아기들과 같이 지낸다. 그러면 나중에 우리 재단이 어떤 문제를 위해 일할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멜린다는 “가장 강하게 마음을 울리는 일을 한다. 정서적으로나 지적으로나 강렬한 느낌을 주는 문제를 선정한다”고 했다. 이것이 멜린다가 게이츠 재단이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방법이다. 남편 빌이 “빈민촌의 땅은 정부 소유인가”, “자선기관 직원들의 보수는 얼마인가” 등 경영자식 질문을 던지는 것과는 다른 태도다.

◆세상을 변화시킨다=세계가 멜린다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것은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네트워크의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게이츠 재단의 기금은 320억 달러(약 30조원). 작은 나라 정부보다 더 큰일을 해낼 능력이 있고, 국제기구보다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다.

게이츠 재단은 지금까지 잠비아 등 5개국에 말라리아 예방과 치료를 위해 7억6500만 달러,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글로벌 펀드’에 6억5000만 달러를 투입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70만명이 목숨을 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의 1만1000여개 도서관에는 인터넷을 설치했다. 소수그룹에 속하는 학생 900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대학에 보냈다.

◆다른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멜린다가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동참하도록 영향을 끼치는 것이 더 큰 성과다.

게이츠 재단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작년에는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이 310억 달러를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2004년에는 유럽연합(EU)이 게이츠 재단에 자극받아 개도국 어린이들의 질병 예방을 위해 4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윌리엄 포지 전 미국질병통제센터(CDC) 소장은 “누군가 세계 보건역사를 쓴다면 게이츠 부부는 대전환을 이룬 계기를 만든 사람들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커리어우먼에서 자선사업가로=멜린다는 텍사스주에서 태어나 듀크대학에서 컴퓨터과학·경제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MS에 입사해서 멀티미디어 제품개발부에서 일하다가 1994년 빌 게이츠와 결혼했다.

이들 부부의 고민은 늘 재산을 어떻게 쓸 것인가였다. 결국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멜린다는 WSJ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남편이 모든 것을 하는 줄 알지만 재단이 하는 모든 일 뒤에는 우리 두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역할을 “에이즈와 말라리아로 얼룩진 세계의 어두운 구석에 밝은 빛을 비추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창의적·혁신적인 자선=빌 게이츠는 몇 년 전 “멜린다 때문에 자선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내년엔 MS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재단 일에만 전념키로 했다. 이들은 또 재단의 활동은 멜린다와 빌 게이츠, 워런 버핏의 사후(死後) 50년까지로 한정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기금이 이들 사후 다른 목적으로 쓰이는 것을 막고 단기간에 자금과 자원을 집중 투입해 명확하게 성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게이츠 재단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저 많은 돈을 쓰기 때문만은 아니다. 게이츠 부부가 자원과 열정과 과학을 연결하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자선사업을 하기 때문이다. 자선사업을 할 때도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부자가 되기도 어렵지만, ‘존경받는 훌륭한 부자’가 되는 것은 더 어렵다. 그래서 투명하게 운영되는 세계 최대의 자선재단을 이끄는 멜린다의 리더십이 더욱 주목받는다.

[강인선 논설위원 insu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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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봉사하면 아픈것도 잊어" 40여년 이웃돕는 할머니

Bible 2007. 1. 13. 21:20

[굿뉴스]"봉사하면 아픈것도 잊어" 40여년 이웃돕는 할머니


경남 마산시 월영동에 사는 서두연 할머니의 집에는 손때 묻은 재봉틀이 넉대나 있다.

일흔여덟의 서 할머니에게 이 재봉틀은 둘도 없는 오랜 친구이자 동업자다.

재봉틀이 소리를 내며 쉴새없이 돌아가면 어느새 오색의 옷감들이 하나둘 속바지와 밥상보 등으로 변신한다.

서두연 할머니는 "옷을 만들다 보면 아픈 것도 다 날아가 버리고 봉사를 정말 잘했구나 하는 보람이 생겨요"라고 말한다.

서 할머니가 며칠동안 밤낮없이 만든 속바지며 밥상보 등은 잠시 후면 주인이 기다리고 있는 사회복지시설이나 경로당, 병원등에 보내지게 된다.

이렇게 보내진 속옷만도 올해 6백여벌을 합쳐 20년 동안 80여차례에 걸쳐 만여벌이 넘는다.

물론 서 할머니 혼자서 이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 할머니가 10년 넘게 회장으로 있는 마산시 합포할머니봉사대 20여명의 회원들이 든든한 동업자로 나서 십시일반 회비를 모으고 틈틈이 노력봉사를 해 가능한 것이다.

서 할머니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마다하지 않고 봉사가 즐겁다며 함께 나서 주는 할머니 회원들이 고맙기만 하다.

"할머니들이 일이 없을 때는 잠시 쉬자고도 하는데 그러다가도 쉬고 있으면 잠만 오고 살만 찌는 것 같다면서 스스로 봉사하겠다고 나설 때가 정말 기쁘더라구요"

서 할머니의 이웃사랑은 여기에 그치지 않다.

해마다 해오고 있는 밑반찬 봉사에서부터 중고품교환 판매장 운영 봉사활동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이런 서 할머니를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평가한다.

마산시청 정진숙 복지사는 "서두연 회장님은 삶 자체가 봉사로서 생활화된 삶을 사는 분이시죠. 마산 봉사계의 원로라고 할까요?"라고 말했다.

거의 40년 가까이를 한결같이 어려운 이웃의 형편을 살피고 도와 온 서두연 할머니.

그러나 아직 많이 부족하고 죄송하다며 속바지를 만들기 위해 옷감을 올리고 또 다시 재봉틀을 돌린다.

"봉사를 해보니까 좋은 일이 많더라. 몸이 건강하다면 인생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봉사를 하고 싶어요"

추운 겨울, 이웃을 위해 한 평생을 살아온 서 할머니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경남CBS 송봉준기자 bjsong@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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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방언은 어떻습니까?

Prayer in tongue 2007. 1. 13. 20:29

그렇다면 방언은 어떻습니까?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전 신학생은 아니고요 학부4학년에 다니는데 신학지망생
열혈남아 입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김지찬 교수님의 언어의 직공이
되라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고 이곳을 찿게 되었는데 아무 유익하고
논쟁적인 내용이 많아 한참을 읽다가 이렇게 염치불구하고 글까지 남김니다.

글쓰신 분은 신대원생이시겠죠?
제가 내공이 짧아 명확한 판단이 서있지 않아서 글쓰신 분의 견해를
참조코자 합니다.
저 역시 보수적이라는 합동측 교단 교회에 출석중인데
대체로 성령의 은사중 가장 일반적이고 사모할만한 은사가 방언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는듯 합니다. 새벽기도회 나가보면 방언하는 분 아주 많아요
그래서 방언 못하는 사람의 신앙은 아직은 유치한 단계이지 않나하는
무의식속에 편견이 널리 자리하고 있는듯 합니다.
그런데 그 방언이라는것이 대게는 괴성에 가까운 파열음이나 알아듯기 힘든 몇개의 단어를 조합한것을 반복하는 것이 일반적 현상입니다.
그런데 성경적인 방언은 분명 '외국어'이지 않나요?
오순절 성령 강림을 목격한 사람들이 이들이 내 고향말로 기도하는 것이
어떻게 된 일이냐? 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언어가 아닌 방언기도는 방언이라고 보기 힘들지 않습니까?
그리고 방언또한 그 시절 복음의 급속한 확산을 위해 하나님꼐서 한시적
으로 주신 은사아닐까요?
요즘같이 종로통이다 강남바닥이다 외국어 학원 많은 세상에 누구는
공부하느랴 똥줄타는데 누구는 공부도 않하는데 그냥 기도하니 주시더라
이거 공의로우신 우리 하나님의 성품과 어긋나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저도 분명 일본어로 기도하시는 분 봤습니다.
정말 방언은사가 있긴 있더군요.
아무튼 성경상 성령은 진리의 영, 지혜의 영인데
달구워진 감정에만 호소하는 교회현실.
말씀자체의 능력보다 기묘하고 신비로운 일만을 쫓는 현실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Re.. 방언에 대한 저의 견해  

제가 이곳에 글을 올려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득불 글을 올리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대전 신학대학교에 재학중인 4학년 유정호(yu0691@hanmail.net)라고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좁은 지식과 체험을  근거로 하여 우리 형제님께 저의 소견을 제시할까 합니다.
              방언의 은사에 대한 필자의 견해?
 방언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은사 중 한가지입니다(고전 12:4-11) .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영적인 선물로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고전 12:7).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 성령께서는 이 교회위에 임하셔서 이 시대를 향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어가심니다. 지금도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주시라 할 수 없습니다(고전 12:3). 그러기에 성령의 은사가 지금도 유효합니다.  우리가 이단이라 정죄하고 있는 여호와 증인들의 주장 중 한가지가 바로 성령의 은사는 성경의 기록이후에 모두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방언의 은사는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이지요. 제 자신이 체험을 했기에 확신할 수 있습니다.
참고) 여호와 증인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교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예) 예수님을 그들은 하나의 피조물로 믿을 뿐이고 결코 하나님으로 믿질 않습니다. 또한 성령의 은사를 그들은 부정하지요.
 사도행전에는 두 가지 유형의 방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첫째는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외국어(행 2:1-15)
둘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고전 14:2: "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이 방언은 외국어라고 할 수 없는 말이지요.
 형제님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외국어의 은사를 꼭 필요한 경우에는 하나님의 은사를 주신다고 들었습니다(제가 분명히 들었는데 구체적인 예는 못들겠어요)
 은사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데요.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신다고 합니다. 부지런히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형제님께 필요한 은사를 필요적절하게 주실겁니다. 아울러 형제님의 앞길에 주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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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원어에서 혀를 뜻하는 낱말은 또한 '언어'(창11장)를 뜻한다

Prayer in tongue 2007. 1. 13. 18:06
방언
성경 원어에서 혀를 뜻하는 낱말은 또한 '언어'(창11장)를 뜻한다. 고전12:10에서는 성령*의 여러 은사 가운데서 방언, 곧 통역 없이는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소리로 말하거나 기도 드리는 것에 대해 말한다(막16:17; 행10:46; 19:6도 참조). 사람들은 다른 여러 종교에서 나타나는 이와 비슷한 현상들에 비추어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또 이전 구약 성경의 예언자 무리들에 대한 묘사(이를테면 삼상10:10-13)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보았기 때문에, 방언을 흔히 무아경, 곧 방언하는 사람 자신은 통제할 수 없는 일로 이해했다. 요즈음의 경험에 따르면 방언은 온전한 의식 가운데 그것도 방언하는 사람이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맡기는 식으로 할 수 있다. 방언할 때는 방언하는 사람은 몰랐던 언어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하거나(행2:4의 경우처럼) 아니면 완전히 모르는 표현 방식으로 할 수 있다. 고전14장에서 바울이 방언의 은사를 자세히 다루는 것은 고린도 교회에서 이 은사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이 은사를 받기를 바랐는데, 기도 및 개인적인 경건의 특수한 형태로서 방언은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은 예배에서 이 은사를 과대 평가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방언'을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침묵하든지 아니면 통역의 은사를 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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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끔 철야예배나 금요기도에 참석하는데

Prayer in tongue 2007. 1. 13. 18:06
저는 가끔 철야예배나 금요기도에 참석하는데, 집회 시간에 같은 기도제목을 놓고 여러
사람들이 제각기 큰소리를 내어 기도를 합니다. 그 때문에 고민이 됩니다. 혼자서 기도
하려니 기도실에서 오래 버티기 힘들고 기도회에 참석하자니 때로 다른 사람의 기도소
리가 본의 아니게 들려서 제 자신의 기도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통성기도가
다른 사람의 기도에 방해가 된다면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는 소리를 좀 낮추거나 마음
속으로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요?

기도의 스타일이 다른 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기도에 대한 생각과 습관의 차이입니다.

기도를 하고 싶은 마음에 철야나 금요기도회를 스스로 찾게 된 성도님의 마음이 귀하게 느껴집니
다. 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의 기도소리로 인해 자신의 기도에 집중하지 못했던 경험은 유독 성도님
만 느끼셨던 경험은 아닐 겁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한 것들이지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성격
이나 행동에 일정한 스타일이 있듯이, 기도 또한 자신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소리를 내서 기도하기보다는 마음 속으로 기도하거나 스스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
의 나지막한 소리로 기도하는 것이 익숙한 편입니다. 다른 성도님들의 통성기도 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들릴 때도 있지만 이제는 마음을 편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도에 대한 습
관의 차이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도회를 가고 싶은데 통성기도 소리 때문에 본인의 기도를 집중할 수 없다면 어떻게 대
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저 개인적으로는 혼자서 기도할 때 작은 소리로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보
심이 어떨까 합니다. 기도회에 참석할 때 먼저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자신이 기도할 제목들을 종이로 적어놓고 틈나는 대로 보면서 기도하는 것도 방향을 잃지 않고 기
도하는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침묵으로 기도하든 통성으로 기도하든 겉모습보다 간절하고 진실
된 마음의 자세를 하나님께서 받으셨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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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믿음을 위해서 방언의 은사를 사모하여

Prayer in tongue 2007. 1. 13. 18:05
더 큰 믿음을 위해서 방언의 은사를 사모하여 구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응답
이 없으십니다. 기도할 때에 방언의 은사를 달라고 매일 같은 이야기를 똑같이 구해야
하는 건지,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계속 구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거룩한 목적을 소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방언은 하나님의 선물이죠. 제가 보기에 성도님은 예수님을 영접하신 분 같습니다. 그러면 이미
성령의 세례는 받으신 것이고 이미 성령께서 성도님 가운데 내주해 계시지요. 예수님을 그리스도
로 영접한 모든 사람은 성령세례를 받았으며,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모든 사람들이 다 방언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성령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은
사들 중에 한 가지이기 때문입니다.(고전12:8-10).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 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
고"(고전13:1).
성도님께서는 비록 방언이 없더라도 충분히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고 성령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믿음의 분량이 되시는 분 같습니다. 내주하신 성령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살 때 비록 방언의 은사가 주어지지 않았더라도 깊은 기도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없는 은사보다
는 지금 성도님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다른 은사가 있을 것 같군요. 은사는 서로 비교할 수 있
는 것이 아니지요. 받은 은사를 잘 개발하고 사용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그것이 진짜 축복
받은 성도의 삶이지 않을까요.
정말 성도님께서 원하신다면 같은 기도지만 계속 하셔도 됩니다. 그러면서 방언의 은사를 받아 어
떻게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고 싶은지 거룩한 목적을 소유하시면 좋겠군요. 비록 방언의 은사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 마음에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처럼 아무 쓸
모없는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니까요. 현재는 내게 주어진 하나님
의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를 드리는 삶이 더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언하지 않더라도 하
나님을 위해 정말 잘 살 수 있는 방법들은 많이 있으니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을 위해 잘 살 수 있
기 위해 고민하시며 열심히 사시는 것이 현명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욱 큰 은사,
즉 사랑의 은사를 구하라고 하신 것(고전12:31)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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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작년에 처음 방언의 은사를 받고

Prayer in tongue 2007. 1. 13. 18:04
저는 작년에 처음 방언의 은사를 받고, 조금씩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방
언을 허락하신 주님의 뜻이 있는 걸까요? 이 방언의 은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공동체를 위하여 사용하실 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성경에는 두 종류의 방언이 있습니다.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임했던(행2장) 방언과 그 이후
의 방언입니다. 오순절에 임했던 방언은 전도를 위하여 즉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공동체의 탄생
을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은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시니까요. 즉 전도를 위한 방언은 이제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언이 바로 개인의 유익과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방언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이
후 나타나는 방언들은 성령 하나님이 사람에게 임하신 것을 드러내 보이셔서 그 사람에게 확신과
신앙을 주는 은사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방인들이 방언을 하게 되었을 때 그에게 성령
이 임하신 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역시 성령 역사의 여러 표징 중 하나임을 보여주
는 것이었습니다.
방언 사용에 대하여 몇 가지를 적어보겠습니다. 첫째, 방언은 가장 먼저 개인의 신앙을 위하여 하
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방언하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지 방언을 듣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아닙
니다. 하나님이 방언을 주신 기본 목적은 방언을 은사로 받은 사람의 개인적인 신앙의 성장과 확
신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둘째, 방언은 하나님의 임의로 무조건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잘해서, 어떤 공적이 있어서가 아
니라 하나님이 임의로 성령을 따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한다는 것이 자랑이 될 수 없습
니다(우리의 구원처럼). 혹 이 방언이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를 생각하게 함으로 겸손해지는 방
편이 될 수도 있지만, 자기에게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사랑을
하나님께 받는다는 특권의식을 가지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교
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방언은 능력이 아니라 은사입니다. 능력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으로부터 나오지만, 방언
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능력이라면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러므로 방언을 하는 사람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능력 면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넷째, 방언은 많은 은사들 중 가장 개인적인 은사이며, 가장 작은 은사입니다. 가장 큰 은사는 '사
랑'입니다. 방언은 가장 개인적이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방언은 개인적이어서 다
른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방언은 방언하는 사람의 신앙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더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방언 해석하는 은사,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 권면하는 은사, 영을 분별하는 은사 그리고 종국에는 사랑의 은사를 받고자 기도하고 사모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지 않고, 사랑하지 못하는 자리에 서면, 우리의 모
든 은사들은 저주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섯째, 방언은 하나님 나라(교회)에서 서로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자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방언은 개인에게는 유익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예
배시간에 대표기도를 하시는 분이 혼자만의 방언으로 기도하면 그 예배를 드리며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 기도에 대해서 알아들을 수 없으므로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고, 함께 기도할 수 없
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의 사용은 반드시 그 방언을 해석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만 공동체 앞
에서 사용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섯째, 방언은 중보하기 위해 사용할 때 가장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하여 간구할 때, 하나님의 교회와 선교 사업과 구제 사업과 교역자들을 위하여 기
도할 때, 교회의 어려운 일과 분쟁을 위하여 기도할 때, 장로님들과 여러 직분자들을 위하여 기도
할 때, 이웃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할 때 등 기도와 함께 그 은사가 사용될 때 아름다운 열매를 함
께 맺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용될 때 '사랑'의 열매도 함께 맺히게 되고 사랑의 은
사와 연결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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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은사와 방언에관해

Prayer in tongue 2007. 1. 13. 18:03

예언의 은사와 방언에관해  

1.예언의 은사가 궁금합니다.
이미 계시은사는 끝났고.그러면 은사가진 사람이 다른사람의 미래에 될일에 대해서
알수도있나요?
그 사람이훗날 어느길로 가야 무엇이 된다는그런거요.
목회자가 된다느니하는 그런종류를 말하는 겁니다.
얼핏보면 신비주의같은데도 성경에서 은사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존재한다고 한 이상 꼭 그렇게만도 볼수없는거 같습니다.
다만 치우치지 않도록 경계를 해야한다는것은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아직도 이런은사가 존재하는지.은사가진분들 보면 다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말하시는 분이 잇습니다.된일과 되어질일에 관해서.
꼭 운명같이
궁금합니다.현재 이런것이 가능한건지.

2.그리고 방언을 하는 분들보면 마귀방언이 나올수도 있다는데.
구원받은자가 방언을 해도 마귀방언이 나올수가있나요?
구원받은자에게 그렇게 사단이 건드릴수가있는건가요?
납득이 잘 안갑니다.구원받은자는 사단이 건드릴수없다는걸로 알고있는데.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은사들이 한국교회에 많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건 인정하고.
기독교역사상 안좋게 끝난적이 있다는거
알고있습니다.그러나 이런 은사를 꼭 배척해야할지 한국교회를 보면
요즘 말씀신앙을 가려하는 움직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신앙추구자들도 어떤분들보면 많이 극단적입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에 관해서 잘 믿지 않는모습을 보게 됩니다.



 Re..예언의 은사와 방언에관해  

한국성서학연구소입니다.
질문자께서 하신 질문은 저희 연구소가 답변해 드릴 내용이 아닙니다.
그리고 질문자께서 하신 질문은 다소 성경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첫째 질문에서 예언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이란 단순히 미래의 일을 예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맡아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래의 일을 마치 점치는 점쟁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예언의 은사로 착각하셔서는 아니되겠습니다.
둘째 질문에서 '마귀 방언'이라고 하신 것은 성경 어디를 봐도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은사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방언에 집착하지 마시고 더 큰 은사를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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