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7.12.02 I'm sorry father I didn't attend the prayer services.
  2. 2007.01.13 우리 모두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제목들을 올려주세요.
  3. 2007.01.13 그렇다면 방언은 어떻습니까?
  4. 2007.01.13 성경 원어에서 혀를 뜻하는 낱말은 또한 '언어'(창11장)를 뜻한다
  5. 2007.01.13 저는 가끔 철야예배나 금요기도에 참석하는데
  6. 2007.01.13 저는 작년에 처음 방언의 은사를 받고
  7. 2007.01.13 예언의 은사와 방언에관해
  8. 2007.01.13 외국어로 하는 방언
  9. 2007.01.13 2007.1.13
  10. 2007.01.11 2007.1.11

I'm sorry father I didn't attend the prayer services.

Prayer 2007. 12. 2. 12:55
I didn't attend the prayer service this morning.
I didn't attend the evening prayer service last night.
:

우리 모두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제목들을 올려주세요.

Prayer 2007. 1. 13. 21:32
우리 모두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제목들을 올려주세요.
자기와 관련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

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모여 바다를 이루듯이
우리 기도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바다를 이룰 것입니다.
시작은 작으나 끝은 클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입니다.
모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마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의 강한 바램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 강한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주의 기운을 바꿀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주의 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가장 강력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주의 흐름에 가장 강력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우리 이외의 누군가를 위해
우리 이외의 무언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면

순수하게 기도할 수 있다면
순수하게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순수하게 땀을 흘릴 수 있다면

여러분은 우주를 바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작은 보이나
그 끝은 아무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순수한 기도는
그 끝을 볼 수 없습니다.
아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신이 그 끝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끝이 신과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방언은 어떻습니까?

Prayer in tongue 2007. 1. 13. 20:29

그렇다면 방언은 어떻습니까?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전 신학생은 아니고요 학부4학년에 다니는데 신학지망생
열혈남아 입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김지찬 교수님의 언어의 직공이
되라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고 이곳을 찿게 되었는데 아무 유익하고
논쟁적인 내용이 많아 한참을 읽다가 이렇게 염치불구하고 글까지 남김니다.

글쓰신 분은 신대원생이시겠죠?
제가 내공이 짧아 명확한 판단이 서있지 않아서 글쓰신 분의 견해를
참조코자 합니다.
저 역시 보수적이라는 합동측 교단 교회에 출석중인데
대체로 성령의 은사중 가장 일반적이고 사모할만한 은사가 방언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는듯 합니다. 새벽기도회 나가보면 방언하는 분 아주 많아요
그래서 방언 못하는 사람의 신앙은 아직은 유치한 단계이지 않나하는
무의식속에 편견이 널리 자리하고 있는듯 합니다.
그런데 그 방언이라는것이 대게는 괴성에 가까운 파열음이나 알아듯기 힘든 몇개의 단어를 조합한것을 반복하는 것이 일반적 현상입니다.
그런데 성경적인 방언은 분명 '외국어'이지 않나요?
오순절 성령 강림을 목격한 사람들이 이들이 내 고향말로 기도하는 것이
어떻게 된 일이냐? 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언어가 아닌 방언기도는 방언이라고 보기 힘들지 않습니까?
그리고 방언또한 그 시절 복음의 급속한 확산을 위해 하나님꼐서 한시적
으로 주신 은사아닐까요?
요즘같이 종로통이다 강남바닥이다 외국어 학원 많은 세상에 누구는
공부하느랴 똥줄타는데 누구는 공부도 않하는데 그냥 기도하니 주시더라
이거 공의로우신 우리 하나님의 성품과 어긋나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저도 분명 일본어로 기도하시는 분 봤습니다.
정말 방언은사가 있긴 있더군요.
아무튼 성경상 성령은 진리의 영, 지혜의 영인데
달구워진 감정에만 호소하는 교회현실.
말씀자체의 능력보다 기묘하고 신비로운 일만을 쫓는 현실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Re.. 방언에 대한 저의 견해  

제가 이곳에 글을 올려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득불 글을 올리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대전 신학대학교에 재학중인 4학년 유정호(yu0691@hanmail.net)라고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좁은 지식과 체험을  근거로 하여 우리 형제님께 저의 소견을 제시할까 합니다.
              방언의 은사에 대한 필자의 견해?
 방언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은사 중 한가지입니다(고전 12:4-11) .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영적인 선물로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고전 12:7).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 성령께서는 이 교회위에 임하셔서 이 시대를 향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어가심니다. 지금도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주시라 할 수 없습니다(고전 12:3). 그러기에 성령의 은사가 지금도 유효합니다.  우리가 이단이라 정죄하고 있는 여호와 증인들의 주장 중 한가지가 바로 성령의 은사는 성경의 기록이후에 모두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방언의 은사는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이지요. 제 자신이 체험을 했기에 확신할 수 있습니다.
참고) 여호와 증인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교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예) 예수님을 그들은 하나의 피조물로 믿을 뿐이고 결코 하나님으로 믿질 않습니다. 또한 성령의 은사를 그들은 부정하지요.
 사도행전에는 두 가지 유형의 방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첫째는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외국어(행 2:1-15)
둘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고전 14:2: "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이 방언은 외국어라고 할 수 없는 말이지요.
 형제님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외국어의 은사를 꼭 필요한 경우에는 하나님의 은사를 주신다고 들었습니다(제가 분명히 들었는데 구체적인 예는 못들겠어요)
 은사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데요.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신다고 합니다. 부지런히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형제님께 필요한 은사를 필요적절하게 주실겁니다. 아울러 형제님의 앞길에 주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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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원어에서 혀를 뜻하는 낱말은 또한 '언어'(창11장)를 뜻한다

Prayer in tongue 2007. 1. 13. 18:06
방언
성경 원어에서 혀를 뜻하는 낱말은 또한 '언어'(창11장)를 뜻한다. 고전12:10에서는 성령*의 여러 은사 가운데서 방언, 곧 통역 없이는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소리로 말하거나 기도 드리는 것에 대해 말한다(막16:17; 행10:46; 19:6도 참조). 사람들은 다른 여러 종교에서 나타나는 이와 비슷한 현상들에 비추어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또 이전 구약 성경의 예언자 무리들에 대한 묘사(이를테면 삼상10:10-13)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보았기 때문에, 방언을 흔히 무아경, 곧 방언하는 사람 자신은 통제할 수 없는 일로 이해했다. 요즈음의 경험에 따르면 방언은 온전한 의식 가운데 그것도 방언하는 사람이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맡기는 식으로 할 수 있다. 방언할 때는 방언하는 사람은 몰랐던 언어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하거나(행2:4의 경우처럼) 아니면 완전히 모르는 표현 방식으로 할 수 있다. 고전14장에서 바울이 방언의 은사를 자세히 다루는 것은 고린도 교회에서 이 은사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이 은사를 받기를 바랐는데, 기도 및 개인적인 경건의 특수한 형태로서 방언은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은 예배에서 이 은사를 과대 평가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방언'을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침묵하든지 아니면 통역의 은사를 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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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끔 철야예배나 금요기도에 참석하는데

Prayer in tongue 2007. 1. 13. 18:06
저는 가끔 철야예배나 금요기도에 참석하는데, 집회 시간에 같은 기도제목을 놓고 여러
사람들이 제각기 큰소리를 내어 기도를 합니다. 그 때문에 고민이 됩니다. 혼자서 기도
하려니 기도실에서 오래 버티기 힘들고 기도회에 참석하자니 때로 다른 사람의 기도소
리가 본의 아니게 들려서 제 자신의 기도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통성기도가
다른 사람의 기도에 방해가 된다면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는 소리를 좀 낮추거나 마음
속으로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요?

기도의 스타일이 다른 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기도에 대한 생각과 습관의 차이입니다.

기도를 하고 싶은 마음에 철야나 금요기도회를 스스로 찾게 된 성도님의 마음이 귀하게 느껴집니
다. 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의 기도소리로 인해 자신의 기도에 집중하지 못했던 경험은 유독 성도님
만 느끼셨던 경험은 아닐 겁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한 것들이지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성격
이나 행동에 일정한 스타일이 있듯이, 기도 또한 자신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소리를 내서 기도하기보다는 마음 속으로 기도하거나 스스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
의 나지막한 소리로 기도하는 것이 익숙한 편입니다. 다른 성도님들의 통성기도 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들릴 때도 있지만 이제는 마음을 편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도에 대한 습
관의 차이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도회를 가고 싶은데 통성기도 소리 때문에 본인의 기도를 집중할 수 없다면 어떻게 대
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저 개인적으로는 혼자서 기도할 때 작은 소리로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보
심이 어떨까 합니다. 기도회에 참석할 때 먼저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자신이 기도할 제목들을 종이로 적어놓고 틈나는 대로 보면서 기도하는 것도 방향을 잃지 않고 기
도하는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침묵으로 기도하든 통성으로 기도하든 겉모습보다 간절하고 진실
된 마음의 자세를 하나님께서 받으셨을 줄 믿습니다.
:

저는 작년에 처음 방언의 은사를 받고

Prayer in tongue 2007. 1. 13. 18:04
저는 작년에 처음 방언의 은사를 받고, 조금씩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방
언을 허락하신 주님의 뜻이 있는 걸까요? 이 방언의 은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공동체를 위하여 사용하실 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성경에는 두 종류의 방언이 있습니다.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임했던(행2장) 방언과 그 이후
의 방언입니다. 오순절에 임했던 방언은 전도를 위하여 즉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공동체의 탄생
을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은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시니까요. 즉 전도를 위한 방언은 이제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언이 바로 개인의 유익과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방언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이
후 나타나는 방언들은 성령 하나님이 사람에게 임하신 것을 드러내 보이셔서 그 사람에게 확신과
신앙을 주는 은사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방인들이 방언을 하게 되었을 때 그에게 성령
이 임하신 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역시 성령 역사의 여러 표징 중 하나임을 보여주
는 것이었습니다.
방언 사용에 대하여 몇 가지를 적어보겠습니다. 첫째, 방언은 가장 먼저 개인의 신앙을 위하여 하
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방언하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지 방언을 듣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아닙
니다. 하나님이 방언을 주신 기본 목적은 방언을 은사로 받은 사람의 개인적인 신앙의 성장과 확
신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둘째, 방언은 하나님의 임의로 무조건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잘해서, 어떤 공적이 있어서가 아
니라 하나님이 임의로 성령을 따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한다는 것이 자랑이 될 수 없습
니다(우리의 구원처럼). 혹 이 방언이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를 생각하게 함으로 겸손해지는 방
편이 될 수도 있지만, 자기에게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사랑을
하나님께 받는다는 특권의식을 가지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교
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방언은 능력이 아니라 은사입니다. 능력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으로부터 나오지만, 방언
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능력이라면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러므로 방언을 하는 사람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능력 면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넷째, 방언은 많은 은사들 중 가장 개인적인 은사이며, 가장 작은 은사입니다. 가장 큰 은사는 '사
랑'입니다. 방언은 가장 개인적이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방언은 개인적이어서 다
른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방언은 방언하는 사람의 신앙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더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방언 해석하는 은사,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 권면하는 은사, 영을 분별하는 은사 그리고 종국에는 사랑의 은사를 받고자 기도하고 사모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지 않고, 사랑하지 못하는 자리에 서면, 우리의 모
든 은사들은 저주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섯째, 방언은 하나님 나라(교회)에서 서로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자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방언은 개인에게는 유익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예
배시간에 대표기도를 하시는 분이 혼자만의 방언으로 기도하면 그 예배를 드리며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 기도에 대해서 알아들을 수 없으므로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고, 함께 기도할 수 없
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의 사용은 반드시 그 방언을 해석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만 공동체 앞
에서 사용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섯째, 방언은 중보하기 위해 사용할 때 가장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하여 간구할 때, 하나님의 교회와 선교 사업과 구제 사업과 교역자들을 위하여 기
도할 때, 교회의 어려운 일과 분쟁을 위하여 기도할 때, 장로님들과 여러 직분자들을 위하여 기도
할 때, 이웃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할 때 등 기도와 함께 그 은사가 사용될 때 아름다운 열매를 함
께 맺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용될 때 '사랑'의 열매도 함께 맺히게 되고 사랑의 은
사와 연결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할 수 있죠.
:

예언의 은사와 방언에관해

Prayer in tongue 2007. 1. 13. 18:03

예언의 은사와 방언에관해  

1.예언의 은사가 궁금합니다.
이미 계시은사는 끝났고.그러면 은사가진 사람이 다른사람의 미래에 될일에 대해서
알수도있나요?
그 사람이훗날 어느길로 가야 무엇이 된다는그런거요.
목회자가 된다느니하는 그런종류를 말하는 겁니다.
얼핏보면 신비주의같은데도 성경에서 은사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존재한다고 한 이상 꼭 그렇게만도 볼수없는거 같습니다.
다만 치우치지 않도록 경계를 해야한다는것은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아직도 이런은사가 존재하는지.은사가진분들 보면 다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말하시는 분이 잇습니다.된일과 되어질일에 관해서.
꼭 운명같이
궁금합니다.현재 이런것이 가능한건지.

2.그리고 방언을 하는 분들보면 마귀방언이 나올수도 있다는데.
구원받은자가 방언을 해도 마귀방언이 나올수가있나요?
구원받은자에게 그렇게 사단이 건드릴수가있는건가요?
납득이 잘 안갑니다.구원받은자는 사단이 건드릴수없다는걸로 알고있는데.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은사들이 한국교회에 많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건 인정하고.
기독교역사상 안좋게 끝난적이 있다는거
알고있습니다.그러나 이런 은사를 꼭 배척해야할지 한국교회를 보면
요즘 말씀신앙을 가려하는 움직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신앙추구자들도 어떤분들보면 많이 극단적입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에 관해서 잘 믿지 않는모습을 보게 됩니다.



 Re..예언의 은사와 방언에관해  

한국성서학연구소입니다.
질문자께서 하신 질문은 저희 연구소가 답변해 드릴 내용이 아닙니다.
그리고 질문자께서 하신 질문은 다소 성경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첫째 질문에서 예언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이란 단순히 미래의 일을 예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맡아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래의 일을 마치 점치는 점쟁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예언의 은사로 착각하셔서는 아니되겠습니다.
둘째 질문에서 '마귀 방언'이라고 하신 것은 성경 어디를 봐도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은사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방언에 집착하지 마시고 더 큰 은사를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

외국어로 하는 방언

Prayer in tongue 2007. 1. 13. 18:02

Q. 외국어로 하는 방언만 참된 방언이고 다른 방언은 모두 사단이 주는 거짓 방언인가요? 방언은 연습을 통해서 숙달될 수 있나요? 말이 느린 사람은 방언을 받을 수 없나요? 은사주의는 옳은 주장인가요?
 
A.

1. 우리 말 성경에서 "방언"이라고 번역한 말은 헬라어 "글로싸"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원래 "혀", "언어(방언)"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말이 "성령에 의해 특별한 형태의 말을 하는 초월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 오순절에 사도들은 성령을 받고 각기 "다른 벙언(언어)"으로 말하기 시작했으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태어난 곳의 방언(언어)으로 그 말을 알아들었습니다(행 2:4-7,8). 아마도 이 경우의 방언 현상은 외국어를 포함하는 특수한 형태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여러 가지 방언으로 말하게 하신 것은 요엘이 예언한 시대(만민이 성령을 받는 세대)가 도래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구약 시대에는 성령께서 특별한 직분을 맡은 자들(왕, 제사장, 선지자 등)에게 주로 임했습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모든 사람에게(일반 신도까지) 성령이 부어지는 특별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러한 시대가 도래했음을 사도들의 입을 통해 증거하셨으며, 그 증거를 예루살렘에 모인 각국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약 19개국 정도)로 알아듣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만민이 성령을 받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는 표징이었습니다.


3.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고넬료의 가정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을 때에도 일어났습니다(행 10:46). 이것은 이 시대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시느 시대라는 것을 알리는 표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건을 "이방인의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4. 그 후에 성령을 모르는 세례요한의 제자들(12명정도)도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을 때에 방언을 하고 성령이 임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행 19:6). 이러한 방언들은 일회에 그치는 현상이었으며 요엘이 말한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특별한 표시였습니다.


5. 바울은 (고전 12-14장)에서 다시 방언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방언은 헬라어로는 모두 사도행전에서 사용된 말과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언급한 방언은 일회성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성령의 은사(선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고전 12:4,10).

* 방언은 이교와 같은 주술적인 현상인가?
바울이 언급한 방언은 영적인 언어로 말하는 현상이었습니다. 물론 이교에도 이와 비슷한 방언 현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언급한 방언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을 주문을 외듯이 하는 이교의 방언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의미가 있는 말이었으며, 기도와 찬양, 그리고 감사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고전 14:15-16). 그러므로 이러한 방언은 통역이 가능했습니다. 통역이 가능했다는 말은 그 말이 의미를 가진 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방언의 은사를 주실 때에 방언 통역의 은사를 같아 주셔서 그 의미를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고전 12:10).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가 이방교도들의 영향으로 잘못된 방언을 해서 바울사도가 이를 책망했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 바울이 금하지 않은 방언은 외국어 방언인가?
또 방언을 금하지 말라는 말이 "전도를 위한 외국어 방언"을 가리킨다는 말도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의 경우에는 외국어 방언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며, 바울이 이러한 방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방언에 대해 책망한 것은 고린도 성도들이 방언을 사용할 때에 질서 없이 사용해서 무리를 일으켰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언은 통역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함께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공개 석상에서 방언하는 경우 예배 질서를 크게 문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통역자가 있는 조건에서만(그것도 여러 통역자가 있어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 그리고 한 사람씩 순차적으로 공개적인 방언을 하도록 지시했습니다(고전 14:26-33).

* 사도 바울 역시 누구보다 이러한 방언에 능숙한 사람이었습니다(고전14:18). 그러므로 그는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만일 바울이 주술적인 방언을 했다면 자신이 방언을 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방언이 훈련과 숙달을 통해서 더욱 유창해 진다는 사실은 부정할 필요도, 또 너무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영적인 언어도 일반 언어처럼 사용하면서 더 능숙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능숙하게 영적인 언어로 말할 수 있도록 해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방언을 사용하면서 더 능숙해질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완벽한 방언을 사용할 수 있는 은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이 느린 사람이 방언을 못받는다는 말은 전혀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주장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벙어리도 입을 열어주시는 성령께서 말이 느린 사람에게 방언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말은 상식 밖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 사도 바울은 방언을 질서 있게 사용하라고 했지, 그것을 금하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고전 14:39)-다시 말하지만 고린도전서에 언급된 방언은 외국어 방언이 아닙니다-바울은 방언 역시 성령이 주신 것이며, 따라서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임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습니다(고전 12:7). 단지 바울은 방언이나 기타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되, 모든 것을 적덩하게 하고 질서있게 하라고 지시했을 뿐입니다(고전 14:40).

 
* 은사주의와 방언
  은사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은사주의의 경우에는 방언을 받지 않으면 구원을 못받은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하고,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은사를 가지고 평가하는 주장은 확실히 성경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외국어 방언만 인정하고 모든 방언을 다 사단적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방언이 불신자를 위한 표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성령께서 완고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기 위해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한 성령의 은사 중에는 분명히 영의 언어를 사용해서 기도하고, 찬송하며 감사를 드리는 방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 자신도 이러한 방언을 잘 했습니다. 이러한 은사는 사랑 안에서 질서 있게 사용되기만 하면, 유익한 것이며, 따라서 금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러한 은사는 금지시키는 것보다는 올바르게 사랑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일이 더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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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3

Diary 2007. 1. 13. 13:58
I attended the early morning prayer service.
I got up at 4:30 am.
My wife and daughter went to church with me.

I prayed until 7:50am.
Just one person was praying when I left the church.

I slept for one hour before I left home for work.
I am very happy that I can pray again.
God has given me another chance to serve him as a praying tool for him.

As today is Saturday, about half of the employees are in the office.
The other half are having the day off.
We usually take a Saturday off every two wee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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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

Diary 2007. 1. 11. 21:18
Today I attended the early morning prayer service at the church.
I've attended the service since Jan 4th, 2007.
I usually pray for about two hours.
I always pray in tongues.

Now it's 9:16 pm.
I am going home now to teach my daughter.
She becomes a senior in high school this year.

Tomorrow I teach my son, a junior in high school.

Today I had a very good time at work.
Thank God.

PS.
I had ramen together with my son and daughter.
I disposed of food garbage.

We haven't watched TV for about two months.
As my son and daughter are busy preparing for the college entrance exams,
we have decided to plug out the TV.

My wife is busy with the work relating to a Missionary to a certain country in the middle Asia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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